[단독] 산은, 아시아나항공 제3자 매각 '플랜B' 검토 착수

입력 2023-08-07 16:27   수정 2023-08-07 17:41

이 기사는 08월 07일 16:2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추진해 온 산업은행이 합병절차 무산을 전제로 한 제3자 매각 등 대안 검토에 착수했다. 두 국적 항공사간 합병이 미국과 유럽연합(EU)등 해외 경쟁당국에 막혀 장기간 표류하자 '플랜B' 마련에 돌입한 것으로 해석된다.

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산은은 삼일회계법인을 통해 추후 아시아나항공이 제3자 매각에 돌입할 경우 풀어야 할 문제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재무적 보완 사항 등을 포함한 내용의 컨설팅에 착수했다. 산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내부에선 '아시아나항공 안정화방안'으로 알려져있다. 컨설팅 안엔 제3자 매각을 전제로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 강화 방안과 비용 절감 방안 등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기류와는 달라진 움직임이다. 산은은 지난 6월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이 무산되는 경우에 대한 플랜B는 현재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공식적으로 밝혀왔다. 두 달여만에 대안을 찾기로 방침을 선회한 것은 양사의 합병을 둔 유럽연합(EU)과 미국 규제당국의 벽이 공고한 점이 반영됐다. 미국 법무부(DOJ)는 지난 5월 대한항공에 "독점을 해소할 경쟁 항공사가 없으면 합병 승인이 어렵다"고 통보한 바 있다. 2단계 기업심사를 진행 중인 EU집행위원회(EC)도 양사 합병으로 여객 분야와 항공화물 운송 시장의 경쟁제한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합병 강행을 둔 산은과 대한항공 간 온도차도 감지된다. 대한항공은 이달 초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부분을 티웨이항공 등 국내 항공사에 매각해 해외 규제당국의 요구에 대응하겠다는 방안을 산은에 보고했지만 산은 내에선 승인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하고 시너지를 끌어올리겠다는 합병 초 청사진과 달리 사실상 아시아나항공의 해체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산은은 일단 확대 해석에 선을 긋고 있다. 산은 측은 "삼일회계법인을 통해 수행하는 컨설팅은 기업결합 장기화와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환경변화에 따른 사업계획 추정과 향후 자금수지 분석 차원"이라며 "제3자 매각은 현재 추진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아시아나 해체 요구"...美·EU 장벽에 결국 플랜B 준비하는 산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무산을 대비한 '플랜B'는 없다"던 산업은행 내부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활로를 찾지 못하면서다. 일각에선 사실상 경쟁 당국이 불허 의사를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다간 아시아나항공이 완전히 망가지고, 공적자금으로 대한항공만 도와줬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질 것을 우려한 산은이 출구 전략을 찾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시아나 해체' 감수해야…부담 커진 산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에 나서면서 산은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대한항공은 이달 초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통과를 위해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를 매각하는 방안을 산은 측에 제시했다. 미국과 EU 등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할 경우 독점이 심화될 수 있다며 기업결합 허가를 내주지 않는 데 따른 대응책이다. 화물사업은 2021년 아시아나항공의 항공운송 매출의 72.5%를 차지하는 등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아시아나항공을 먹여 살린 알짜 사업부다.

대한항공은 자사와 아시아나항공이 갖고 있는 일부 미국 노선과 유럽 노선을 국내 다른 항공사에 넘기는 방안도 함께 고민 중이다. 대한항공은 이 같은 내용을 미국과 EU 등 경쟁 당국에 제출하겠다고 이달 초 산은에 함께 보고했다.

산은은 신중한 입장이다. 화물사업부를 매각하고, 미국·유럽 등 장거리 핵심 노선을 넘기는 건 사실상 아시아나항공을 공중분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결함 심사를 통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방식의 합병은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에 넘기는 본래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게 산은의 생각이다.

대응책을 이행하더라도 미국과 EU 등 경쟁당국이 기업결합 허가를 내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경쟁당국은 허가 이전에 독점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선조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선조치 후에도 허가를 내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불승인" 꿈쩍않는 美·EU 규제당국
산은 내부에선 여객 슬롯(특정 공항에 이착륙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대) 반납을 넘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 논의까지 구체화되자 더 이상 무리하게 합병을 추진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나온다. 대한항공이 어떤 대안을 가져가도 경쟁당국이 기업결합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 법무부(DOJ)는 지난 5월 대한항공에 "독점을 해소할 경쟁 항공사가 없으면 합병 승인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대한항공은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프레미아에 주요 노선을 넘기는 등 LCC를 키워 독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제안했지만 DOJ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EU 집행위원회(EC)도 지난 6월 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관련 조사를 중단하고 이달 초로 예정됐던 최종 승인 결정 시점을 연기했다. 업계에선 DOJ와 EC가 사실상 합병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해석한다.

산은이 "플랜B는 없다"던 기존 기조를 접고, 삼일회계법인에 컨설팅을 맡기는 등 합병 무산 이후 시나리오 구상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더 이상 합병이 지연되면 산은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도 산은이 제3자 매각 카드를 만지작 거리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산은이 2020년 11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처음 발표한 뒤 3년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시아나항공은 망가지고 있다. 지난 1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총부채는 12조8147억원으로 부채비율은 2000%를 넘어섰다. 2020년 1월 이후 신규 채용도 못했다. 아시아나항공이 흔들리는 사이 대한항공은 사실상 독점적 사업자로 자리를 굳혔다.

합병이 최종 무산되면 산은을 앞세운 국가 주도의 기간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시장의 비판도 커질 것으로 점쳐진다. HD현대그룹과 대우조선해양 간 조선업 ‘빅딜’이 EU 규제당국에 의해 좌초된 데 이어 항공업 구조조정도 사실상 실패하면서다. 두 사례 모두 산은이 애초에 불가능한 국내 1·2위 사업자간 합병을 무리하게 추진해 이런 결과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플랜B 가동은 최종 불승인 이후
다만 제3자 매각 등 플랜B를 본격 가동하는 시점은 미국과 EU 등 경쟁당국이 기업결합을 최종적으로 승인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다음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가 진행되는 가운데 다른 원매자를 찾아 매각을 논의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서다. 산은은 물밑에서 시나리오를 준비해놓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어그러지면 즉시 다른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사례처럼 물밑에서 원매자를 미리 찾아 확보한 뒤 '깜짝 매각'을 추진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한화 SK 등 대기업에 비밀리에 접촉해 인수 의사를 타진한 뒤 취임 3개월 만에 한화그룹에 대우조선해양을 넘기는 내용을 담은 조건부 투자합의서를 체결했다. 당시에도 강 회장이 '빠른 매각'을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의지를 갖고 추진해 매각이 급물살을 탔다.

차준호 / 박종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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